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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706회   작성일Date 06-11-12 17:39

    본문

    아나키즘적 평등의식-신동엽의 「錦江」

                                        조 해 옥

    신동엽의 長詩 「錦江」은 19세기 후반의 퇴락한 사회의 모습과 그것의 필연적인 소멸을 동학혁명의 전개과정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러한 부정한 현실에 대한 소멸의지는 60년대의 비극적 상황들과 대응하면서 표출된다. 19세기 후반 질곡에 빠진 봉건제도와 피지배층의 극도의 억압 상태, 청·일로 대표되는 외세의 간섭 등은 “물리치자 학정/ 구제하자 백성/ 몰아내자 왜놈/ 몰아내자 뙤놈/ 몰아내자 모든 外勢/ 백성은 한울님이니라”(「금강」, 17장)를 교리로 내세우는 동학혁명 발생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주도하는 신식민주의적 외세의 침탈과 집권계층의 부패에 따르는 일반 대중들의 경제적 궁핍 등은 60년대 혁명 발생의 전제 조건으로 작용한다. 신동엽은 갑오농민 혁명과 4·19혁명을 병치시켜 나가면서 외세가 물러가고 완전한 평등사회가 이루어진 새 시대에 대한 전망을 유보한 채 「금강」을 종결짓는다.

    서로, 자리를 지켜 피어나는
    꽃밭처럼,
    햇빛과 바람 양껏 마시고
    고실고실한 쌀밥처럼
    마을들은 자라났다.

    지주도 없었고
    관리도, 은행주도,
    특권층도 없었었다.

    반도는,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분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백성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늙으면 마을사람들에 싸여
    웃으며 눈감고
    양지바른 뒷동산에 누워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 「錦江」 6장 부분

    戰後의 만연된 이기적 개인주의와 계층적 소외는 60년대 들어와 도시와 농촌의 심화된 괴리와 빈·부, 지배·피지배층 사이의 격차가 첨예화 되는 현상으로 확산된다. 그것은 도시에 편중한 경제정책과 신식민지화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신동엽은 계층 간의 불평등과 분배의 불평등이 완전히 사라진 공간으로 ‘생활의 시대’를 상정한다. 이 ‘생활의 시대’와 유사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 제4화를 보면 신동엽의 의식이 아나키즘적 사유를 펼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 제4화에서도 이상적인 곳은 타인을 지배하지도 않고 지배받지도 않는, 공평하게 삶을 영위하는 공동체적인 곳, 각 개인마다의 인간적인 존엄이 빛나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인간성 회복의 차원에서 전개시켰던 전기시의 현실 극복의지는 위의 작품에서는 뚜렷한 무정부주의의 표출로 나타난다.
    신동엽이 의미하는 무정부주의란 무정부주의에 대한 깊은 인식이었다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아나키즘을 규정하는 근거인 ‘지배받지 않고 내면적 자유의사에 따르는 삶’을 의미하는 無支配 정신을 그의 작품에 구현한 듯 보인다. 신동엽은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본질과 무정부주의를 같은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조지 우드코크는 아나키즘과 민주주의와 혼동하기 쉬운 개념들을 들면서 그 둘 사이의 뚜렷한 거리를 강조한다. “아나키즘이 개인적인 선택에 지고성을 두기 때문에 독재제도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거부한다. 아나키즘을 민주주의의 극단의 형태로 보는 것만큼 아나키즘의 개념상의 진실과도 거리가 먼 것은 없다. 개인의 주권을 옹호하는 아나키즘으로서는 개인의 주권을 대표자에게 넘겨주는 의회제도는 주권을 버리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거부하며, 민주주의의 개인과는 별개의 실재인 ‘인민’을 거부한다.”(조지 우드코크, 『아나키즘-사상 편』, 형설출판사, 1972, 38면)
    신동엽은 작품의 곳곳에서 권력과 경제력에서 소외되고 사회의 부조리한 힘에 억눌린 사람들, 특히 여자와 어린아이로 상징된 피지배 민중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의식은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 좀 더 확고하게 드러난다.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노비도 농삿군도 천민도
    사람은 한울님이니라

    우리는 마음 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니라
    우리의 내부에 한울님이 살아 계시니라
    우리의 밖에 있을 때 한울님은 바람,
    우리는 각자 스스로 한울님을 깨달을 뿐,
    아무에게도 옮기지 못하니라.
    모든 중생이여, 한울님 섬기듯 이웃사람을 섬길지니라.

    수운은
    집에 있는 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키어
    하나는 며느리
    하나는 양딸,

    가지고 있던
    금싸라기땅 열두 마지기
    땅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錦江」 제4장 부분

    위 시의 화자는 수운 최제우의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신 사람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아닌 빈부나 귀천의 구분 없이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모시고 있다는” 제14연 1-2행의 侍天主思想을 그대로 14연 3-4행, 각자의 이기심-各自爲心-을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지닌 동학의 ‘同歸一體’ 사상을 시로 표현해 놓았다
    수운의 侍天主思想에 대해 윤석산은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인간 평등주의를 그의 중요한 사상으로 삼게 된다.  『용담유사』에 나타나는 인간관은 신분과 제도로 班常의 구분을 짓고, 존귀와 미천의 차별이 분명했던 봉건사회를 뛰어 넘는, 근대적 이념에 입각한 인간관이라고 하겠다”라고 풀이하고 있다.(윤석산, 『용담유사 연구』, 민족문화사, 1987, 114-117면)
    ‘同歸一體’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완전한 평등사회에 대한 희원을 나타내는, 동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낙원을 가리킨다. 개인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 내부에 하느님을 모시는 귀중한 존재들이므로 동귀일체의 상태 속에서는 빈·부의 귀천이나 피지배와 지배의 관계는 소멸되고 평등한 질서를 갖는 완전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어느 여름
    동학교도 서노인 집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수저를 들으려니
    안방에서 들려오는
    베 짜는 소리,

    “저건
    무슨 소립니까?”

    “제 며느리애가
    베 짜는가 봅니다.”

    “서선생,
    며느리가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한울님이십니다.

    어서 모셔다가
    이 밥상에서
    우리 함께 다순 저녁
    들도록 하세요.”

    서노인이, 며느리를 데리고 나와
    상머리에 앉을 때까지
    해월은 경문 외며 정좌하고 있었다.
    -「금강」 12장 부분

    신동엽은 해월의 평등사상을 잘 드러내는 일화를 원용하여 시로 형상화하였다. 해월이 어느 동학교도의 집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해월 최시형은 그 집의 며느리를 그녀의 시아버지와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로 불러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해월은 봉건적 신분질서가 그대로 적용되는 가정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며느리를 시아버지와 자신의 밥상에 함께 앉도록 하면서 며느리가 바로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해월의 이 같은 말과 행동은 봉건적 신분 질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長幼有序의 엄격한 질서 속에서 어린이도 부녀자와 마찬가지로 봉건적 신분 질서의 희생자이다. 해월은 자신을 배웅하려고 뒤따라 나오는 손자를 윽박질러 쫓는 서 노인을 제지하며 손자도 하느님으로 받들라고 말하는데 그의 이러한 행동에서도 그의 ‘事人如天’ 사상이 드러난다.
    이러한 동학의 평등사상은 수운이 부녀자와 아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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