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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된 자아와 시적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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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756회   작성일Date 06-11-12 17:51

    본문

    결핍된 자아와 시적 욕망

    윤 종 영

    1. 들어가며

    우리나라 분단의 직접적 원인이 된 ‘한국전쟁’과 그 파괴의 현장을 살았던 시인들은 시를 쓰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에게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세상을 향해 정신의 촉수를 세우고 살아야 하는 시인들은 과연 민족상잔의 비극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그리고 그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시로 형상화 해 냈을까 하는 호기심은 결국 시를 쓰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나에게 묻는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관심으로 당대의 작품들과 참고 문헌을 읽으면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당대의 시인들이 시인으로서는 행복한 시대에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릇 시인이란 지난한 고통 속에서 더 빛나는 시정신을 발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각 시인들이 보여준 시적 성과는 시인의 세계관과 시 쓰기 전략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그들은 시정신의 극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나였다.
    시는 시인의 시정신의 결과물이다. 내가 관심을 갖은 것은 ‘누구의 시’가 아니라 그러한 시를 창작하게 된 시인들의 시인의식이었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극단적 현실에 시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전하거나 적응했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절망이나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시인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내밀한 의식 세계였다.

    2. 1950년대 시정신의 양상

    전후, 50년대 문학이 전개된 것은 엄밀히 말해 휴전 이후로 볼 수 있다. 종전이 되고 전후복구의 상황에서 시인들은 차분하게 자신과 조국을 되돌아볼 심리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비로소 전쟁의 의미에 대해 천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950년대 한국 시의 큰 틀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이고 둘째, 전통주의 시인들이다. 그리고 현실 참여적 성향의 시인들이다.
    모더니스트들은 전후의 정신적 혼란의 원인을 서구 문명과 근대의 공포에서 찾았으며 전쟁이 몰고 온 ‘파괴된 현실’에 주목했다. 박인환은 한국 전쟁이라는 죽음의 현장을 거치면서 ‘죽음’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시인이었다. 그는 도시 중산층 소시민의 모습으로 전쟁을 맞이하였다. 그에게 전쟁은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는 근대 문명의 불합리성 그 자체였던 것이다. 특히, 박인환은 전쟁과 그로 인한 타자의 죽음을 종말론적 사건으로 인식하였다. 이 같은 박인환의 종말론적 세계인식을 통해 나는 전쟁이 한 시인의 정신세계에 미친 거대한 영향과 시대적 결핍의 양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김규동은 전쟁 현실, 즉 근대 문명의 병폐를 시를 통해 고발하면서 근대문명의 불안에 침잠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가 천착했던 전후 현실에서의 ‘신화’의 세계는 50년대라는 특수한 현실적 조건에서 모더니즘 시인들의 현실인식과 현실 대응과정에서의 절망과 희망의 양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김규동은 전후의 현실에서 현실인식의 치열함을 간직했던 시인이었다. 시대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한 시대의 시인으로서 현실에서 ‘불안’을 발견하고 그 불안의식에 굴복하지 않고 현실에 대항하면서 불안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 공포, 환상, 신화의 세계로 시화(詩化)함으로써 전후 현실에 대응하는 시정신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것은 현실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전통주의 시인들은 전후 현실의 비극에서 비껴나 있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영원주의 혹은 ‘한’의 세계를 형성했다.
    서정주는 일제 36년의 긴 시간동안 우리 민족이 잃어버렸던 우리말을 가장 우리말답게 복원해서 쓴 시인이었다. 그리고 전후의 서구 사조 유입의 혼란 속에서 그는 우리의 전통 사상과 맥을 찾는데 자신의 시적 공력을 다하였다. 그 결과, 현실의 혼란을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영원주의와 신라정신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일구어 내었다.
    그의 영원주의는 현실에서의 결핍된 욕망이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난한 시골체험과 남의 집 일을 봐주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부정, 순탄하지 못했던 학창 시절 등 현실에서의 결핍된 욕망이 역사적 순응주의, 또는 무관심을 낳았고 그 결과, 근대의 시간을 초월한 무엇을 찾기에 이른 것이다. 그 탐구의 결과가 이른바 신라정신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정주의 신라정신은 시간을 초월한 시간이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극단의 근대 경험, 그리고 현실에서 채울 길 없는 결핍된 욕망에 대한 욕망이 서정주로 하여금 관념의 세계로 나가게 했던 것이다.
    서정주가 거대한 관념의 세계를 보여줬다면 박재삼은 자신의 가난 체험에서 나온 슬픔을 민족 보편의 ‘한’의 정서로 형상화한 시인이다. 그는 가난했던 유년시절의 원체험에서 우러나온 ‘슬픔’의 정서로 당대 전통주의 시를 계승했다. 그는 구체적 상황의 슬픔을 자신만의 독특한 어조와 율격으로 실어 내 ‘한’이라는 민족 보편의 정서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도 전쟁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숙명적으로 그의 ‘한’이 유년 체험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라고 볼 때, 그의 시가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더니스트들과 전통주의 시인들이 주류를 형성했던 1950년대 중반, 이들과는 달리 당대 현실 모순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현실주의적 경향의 시인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과 분단의 비극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분단극복의 문제에 천착했다.
    박봉우 시정신의 큰 축은 분단극복의 의지이다. 박봉우는 전후의 허무주의와 센티멘탈리즘, 그리고 모더니스트들의 지적 허영을 극복하고 오로지 분단 현실을 시적 과제로 삼은 시인이었다. 등단 작품인 「휴전선」에서 보여준 분단극복의 의지는 그가 평생을 두고 천착한 시적 과제이자 시정신이었다. 박봉우의 시적 고통과 좌절, 그리고 희망의 모습은 모두 통일된 조국에 대한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며 개인적인 불행의 와중에서도 시를 창작할 수 있게 해준 시적 원동력도 분단극복에 대한 시인의 소명 의식이었다.
    전봉건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전쟁 경험을 내면화하는데 성공한 시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전쟁시는 어설픈 감상에 떨어지지 않고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전쟁을 두 가지 방법으로 시화했다. 첫째는 전쟁을 매우 객관적인 눈으로 건조하게 형상화하는 방법이다. 이 때, 시적 화자는 전쟁을 ‘장난’으로 본다거나 전우의 죽음을 무감각하게 전달함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적 측면을 강조한다. 둘째는 센티멘탈한 어조로 전쟁의 슬픔을 노래하는 방법이다. 이 때, 전쟁은 시인의 슬픔과 만나면서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전쟁을 바라봄으로써 파괴된 전후의 현실에서 생명의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전봉건의 생명의식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도 결국 생명을 앗아가지는 못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봉건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전봉건이 전쟁을 노래하면서도 전쟁 자체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전쟁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나오며

    위에서 살펴본 바, 50년대의 시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결핍된 주체로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을 둘러싼 외적 요건들이 지난할수록 시인의 시적 욕망은 더 커지고 아울러 시인의 시정신은 극단적으로 예민해 지기 때문이다. 결국, 당대의 시정신은 결핍된 주체로서의 시인들이 드러낸, 대상에 대한 욕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극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시적 대응이었다. 모더니스트들이나 전통주의자들, 또는 현실주의자들 모두 당대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 대응하면서 자신의 시 정신을 완성해 간 것이다.
    1950년대 한국의 시정신은 시인들에게 던져진 시대적 결핍과 개인이 체험해야 했던 개인적 결핍이 시인의 욕망으로 표출됨으로써 다양한 세계를 형성했다. 1950년대의 시인들은 필연적으로 전쟁과 전후의 현실에서 외부로부터 강요당한 결핍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핍은 공통으로 경험한 것이지만 동시대를 살면서도 개인의 특수한 결핍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가난으로 비롯된 것이든, 실향으로 비롯된 것이든 이 개인적 결핍은 공통으로 경험한 시대적 결핍과 접맥되면서 개성적인 시정신의 세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비이성적인 사건인 ‘전쟁’의 와중에서도 이 땅의 시인들은 결핍된 주체의 욕망의 대상으로서 시를 선택했다. 당대의 시인들은 시대가 부여한, 전쟁이라는 공통의 체험과 개인이 경험한 특수한 체험을 결핍된 주체로 받아들임으로써 욕망 하는 주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시정신이 시인의 역사인식과 현실의식, 그리고 자아탐구의 총합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1950년대는 특수한 시대 상황 때문에 풍요로운 시정신을 담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떤 자세로 시를 쓰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 고난의 50년대를 살아낸 시인들을 보며, 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오늘을 살아내는 나와 내 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핍의 시대, 내 시적 욕망은 환유하고 있는가. 나는 시적으로 욕망하는 주체인가. 그래서 절박한 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가. 나와 너, 그리고 시를 쓰는 우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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