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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경동의 계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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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610회   작성일Date 06-12-14 17:08

    본문

    흔적과 성찰, 노래와 놀이

                                                       류경동

    1
    문학은 현실의 무게와 생의 고통을 어떻게 감당하는가. 시는 자아의 내면에 침윤된 욕망과 상처를 어떻게 다독이는가. 현대시사의 첫머리에서 만나는 「진달래꽃」은 이런 물음에 대해 탁월한 해답을 제시한다. 「진달래꽃」에서 서정적 화자는 이별의 정황을 가정하고 그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한다. 화자는 가실 길에 ‘꽃’을 뿌리는 것으로 사랑과 이별의 ‘말’을 대신하며, 가시는 걸음마다 그 꽃을 ‘즈려밟고’ 가기를 기원한다. 「진달래꽃」의 3연에서 이별의 고통과 슬픔을 완화시키려는 시인의 마음은 운율의 힘을 빌려 거친 ‘짓’을 한층 부드러운 ‘즈려’로 풀어놓고, ‘삽분히’를 통해 ‘즈려밟다’의 무게를 덜어내려 한다. ‘즈려밟다’의 주체가 가시는 걸음이라면, ‘삽분히’는 모진 슬픔을 치유하고픈 시인의 마음에서 나온다. ‘삽분히’는 노래가 현실과 삶의 무게를 절묘하게 떠안는 방법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칼비노는 이 시대의 문학이 추구해야 할 여섯 가지 가치 중의 하나로 ‘가벼움’을 거론하였다. 물론 가벼움은 미학적 준거도 아니고, 현실의 무게와 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유일한 방식도 아니다. 이미 가벼움이 과잉인 시대에 문학적 가벼움의 가치도 새롭게 점검될 필요가 있다. 다만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처럼, 깊이와 무게에 대한 성찰로부터 솟아나는 가벼움은 여전히 유효한 미적인 쾌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성찰은 문학의 본질적 과제이다. 문학이 끊임없이 질문을 생성하고 두루 살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내 안에 침윤된 삶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로부터 파생되는 욕망과 상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지난 계절의 시를 통해 되짚어 보기로 한다.

    2
    흔적은 무엇인가 머물다 사라진 자취이다. 그것은 기의를 감춘 기표와 같아서 해석과 추리의 과정을 예비한다. 문정영의 「흔적들」에서 “흔적”은 스스로의 원인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심층의 징후이다. 흔적의 의미와 맥락은 심층에 의해 규정된다. 심층과 흔적을 분리하고 그 둘을 조망하는 것은 주체의 몫이다. 이때의 주체는 갈등하는 현실의 주체가 아니라 이상적인 주체이다. 이 주체는 흔적들을 수집하고 구성하며,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한다.

    웃옷 다 벗고, 거울 앞
    면도하는 내 몸에
    간밤이 다녀간 흔적들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 잠의 결들에
    살아가는 날들이 입은 옷들과
    살아 있는 날들이 잠든 침구의
    있는 그대로의 문양,
    옆으로 뻗은 나무의 가지처럼
    길게 줄 선 자국은
    평소에 가지 못했던 길을
    가려는 소망,
    가슴 한가운데 뻥 뚫린 듯한 것은
    내 누군가를 그리움으로 적은 글씨인가
    면도를 하는 동안
    뺨 위에 난 소나무껍질 같은 흔적들
    잔잔히 사라지는 것을 본다
    내 안의 미워하는 마음도
    저리 껍질 벗겨지듯 지워졌으면
    꽃무늬 베개를 하고 잔 날은 꽃잎이 진다
    부리가 작은 새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문정영,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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